청주정씨

약포선조축문

정윤덕 2015. 8. 18. 20:11

維歲次甲午九月戊午朔十九日乙丑孝十五代孫00 敢昭告于

顯十五代祖考忠勤貞亮扈聖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

判中樞府事 兼 領 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 諡貞 簡公府君 歲序遷易 諱日復臨 追遠感時 不勝永慕 謹以 淸酌 庶羞 恭伸奠獻 尙 饗

퇴계 이황 축문

維歲次庚辰十二月戊午朔初八日乙丑孝十五代孫東恩

敢昭告于

顯十五代祖考崇政大夫判中樞府事兼知 經筵春秋館事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 經筵

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 諡文純公府君歲序遷易

諱日復臨追遠感時不勝永慕謹以淸酌庶羞恭伸奠獻 尙 饗

領事

조선시대 의정부·돈녕부·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중추부에 있던 정1품직.

각 아문의 서무를 총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정원은 경연에 3, 각 부서에 각 1명씩 두었다. 서반인 중추부에는 1명을 두었는데, 의정(議政)을 역임한 자에게 제수하는 대우직(待遇職)이었다. 1401(태종 1) 국정최고 책임자인 의정부영사를 영의정부사로 불렀다가, 1466(세조 12) 영의정으로 바꾸었다. 같은해 중추부를 두면서 그 전에 있던 중추원영원사(中樞院領院事)를 영사로 바꾸었는데, 영부사·영중추라고 부르기도 했다. 1414(태종 12) 돈녕부를 처음 설치하면서 돈녕부영사를 두었는데, 왕비의 아버지로 처음 수직하는 자에게 제수했으며 대개 영돈녕으로 불렀다. 춘추관·관상감의 영사는 영의정이 겸임했으며, 홍문관과 예문관영사는 3정승 가운데 1명이 겸직했으나 대개 영의정이 겸임했다. 영사는 대개 영의정이 겸임하는 관직으로, 조선시대 중앙통치에 있어 권력이 한 군데로 집중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判中樞府事

조선시대 중추부의 종1품 관직.

정원은 2인이다.

조선시대의 중추부는 특정하게 관장하는 일 없이,

문무당상관으로서 소임이 없는 사람들을 대우하는 기관이었다.

따라서, 이 곳의 판사도 그들 고유의 담당업무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순장(巡將)으로서 행순(行巡 : 순찰)의 임무를 맡는다든가 관찰사나 병마절도사로 겸임되는 등 실질적인 기능을 가지기도 하였다.

중추부판사는 대신급의 고위관원이 체직될 때 잠시 임명되는 자리로 활용되었다.

 

 

조선시대 관직과 품계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대광보국숭록대부 - 品階

의정부 - -소속관청

영의정 - 職位

 

청풍할배

품계: 朝奉大夫 - 4

察訪 6: 품계는 높으나 낮은 직위의 벼슬-行職

 

行 昭村道 察訪

通訓大夫 - 3품 당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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