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상 덕으로
이 제도는 일정한 관직에 있는 사람이나 있었던 사람의 아들이나 손자 등에게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 간단한 시험을 통해 벼슬을 주는 제도로 음직(蔭職), 음서(蔭敍), 문음(門蔭) 등 다양하게 불렸다.
《고려사》 선거지(選擧志)에 의하면 고려시대의 음서는 5품 이상을 지낸 아버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장인, 형,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외숙부 등에 의해 음직을 받을 수 있었으며 공신의 후손은 몇 대를 지난 뒤에도 음직이 가능하였다. 이에 비하면 조선시대에는 많이 축소된 것이다.
《경국대전》 이전(吏典) 취재(取才)를 보면 음직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아래와 같았다.
본인의 품계 또는 직책 | 음직을 받을 수 있는 자 |
친공신, 실직 2품 이상 | 아들, 손자, 사위, 아우, 조카 |
원종공신, 실직 3품 이상 | 아들, 손자 |
3품 아래이지만 이조, 병조, 도총부,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부장, 선전관 등 국가 중요부서 근무자나 근무했던 사람 | 아들 |
음직 대상자는 20세 이상이 된 뒤 매년 정월에 실시하는 시험에 합격하면 7품 이하의 품계(品階)와 거기에 해당하는 관직을 받을 수 있었다.1)
1) 고려시대에는 18세 이상이면 가능했으나 김용선의 《고려음서제도연구》를 보면 실제로는 15세 미만이 발굴사례 43명 중 26명이나 되었고 10세 이하도 12명이나 되는 등 문제가 있었고 어린 나이에 벼슬을 한 사람들의 기를 꺽기 위해 신래(新來) 불리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시험은 5경2)과 4서3) 중에서 하나를 시험하며 음직을 줄 수 있는 사람의 품계에 따라 다르게 주어지는데 아들이나 손자 등이 받을 수 있는 품계는 아래와 같았다.
2)유교의 다섯 가지 경서(經書) 즉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 예기(禮記), 춘추(春秋)를 말함.
3)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말함.
본인의 품계 | 맏아들 | 맏손자, 둘째아들, 사위 등 |
정1품 | 정7품 | 종7품 |
종1품 | 종7품 | 정8품 |
정2품 | 정8품 | 종8품 |
종2품 | 종8품 | 정9품 |
정3품 | 정9품 | 종9품 |
종3품 이하 | 종9품 | 종9품 |
음직은 원칙적으로 맏아들만 받을 수 있었으나 맏아들이 사망 등의 이유로 음직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는 맏손자나 둘째아들 등이 품계를 낮추어 받을 수 있었으며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사망, 퇴직은 관계가 없었다.
음직을 받은 사람들은 아버지나 할아버지 덕택으로 어린나이에 쉽게 벼슬을 받을 수 있었고 그 후 과거에 합격하면 또 품계를 올려주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과거에 합격하여 9품부터 출발하는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승진할 수 있었다.
즉 우선 음직을 받은 뒤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 고위직으로의 승진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어린 나이에 음직으로 벼슬을 받고 과거에 합격하여 고속 승진하는 폐단이 생겨 문제가 되기도 했다.
나중에는 4서5경 중 하나를 시험 보는 것마저 흐지부지되었고 이로 인해 관리들의 기강이 해이해졌다. 한편, 음직으로 관리가 된 뒤 과거에 합격하지 못해도 처신을 바르게 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진선(進善, 세자시강원의 정4품) 정양이 상소하여 자리를 바꿔줄 것을 청하니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정양은 고(故) 재상 정철의 손자로 음직으로 벼슬길에 나와 별다른 학술은 없었으나 꼿꼿하고 깨끗하다는 명성이 있었다.〕 ―현종 8년(1667) 11월 23일
그러나 일부는 음직으로 출발하여 부정을 일삼거나 아부를 일삼아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이는 비단 음직으로 출발한 사람만 아니라 과거에 합격한 사람도 부정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으나 과거합격자들이 음직출신을 비하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라고 보인다.
장세철을 전주부윤으로 삼았다. 장세철은 약간의 행정능력은 있었으나 음직으로 관리가 된 뒤 이이첨에게 아첨하여 2품까지 이르렀는데 벼슬살이하면서 탐욕스럽고 야비하여 오직 수탈하는 것만 일삼았다. ―광해11년(1619) 6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