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83년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별장 은거 4년 만에 5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가족묘지가 로마 영토 안에 있다는 이유로
아피아 가도 연변의 선영에 묻히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배은망덕한 조국이여, 그대는 내 뼈를 갖지 못할 것이다”라는
유언과 함께. 우연이랄까, 세계 전사 상 스키피오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던
64세의 명장 한니발도 그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외적이 사라진 로마는 새로운 영웅 율리우스 카에사르(Julius Caesar 기원전100~기원전 44)가
등장하기까지 100여 년간 정적간의 동족상잔, 동맹 시(도시국가 로마와 동맹을 맺은
이탈리아 반도 내의 도시들) 반란, 세 차례의 노예반란 등 혼미와 자중지란을 겪었습니다.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나 평화로울 수는 없다.
국외에는 적이 없다 해도 국내에 적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 한니발의 경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