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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다운 인연

정윤덕 2013. 4. 24. 21:03

...아름다운 인연

 LAROSS...아름다운 인연

나는 우연히 만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인연은
내 의지와 상관없는 필연이었습니다.

나는 내 뜻대로 사랑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내가 원해서 하는 사랑이 아니고
훨씬 먼저 당신이
나를 사랑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필요할 때만 만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내 곁에서
힘든 일을 먼저 나서서 챙겨주셨습니다.


나는 당신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의 모든 것, 심지어
나의 앞날까지도 알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나는 나만 슬피 우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보다 수백배 애간장 태우면서
밤을 하얗게 새우며 우신 것을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나는 나 혼자 쓸쓸히 걷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 뒤에서 또 앞서서 내 곁에서 
걸어가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나는 모든 일을 
내가 잘해서 이루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게 해답을 챙겨주었는데도
내가 똑똑해서 이룬 줄 착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과의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습니다.

 



다시 쓰지 못하는 편지


젊은 남자가 방바닥에 엎드려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조각하듯 공들여 글씨를 쓰느라 플러스펜을 잡은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갑니다. 남자는 벌써 두 시간째 고개 한 번 들지않고 애를 쓰지만 편지를 다 적지 못하였습니다.

흰 편지지에 무얼 썼다가는 망설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는 그것을 구겨 머리맡에 던져두곤 합니다. 남자는 거듭 새로운 백지에 얼굴을 파묻고 절망합니다. 그새 창밖으로 여러 번 바람이 지나갑니다. 한두 시간이 더 흐르고서야 남자는 가까스로 한 통의 편지를 완성합니다.

행여 다시 읽으면 부끄러울까, 아예 봉투에 편지를 담고 풀칠을 합니다. 남자는 격전을 치른 마음의 잔해처럼 머리맡에 널린 파지들을 베개 삼아 얕은 잠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다음날, 남자는 차마 그 편지를 부칠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하루 종일 몇 번이나 찢어버리고 말까 고심하다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우체통에 편지를 넣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사나흘 그치지 않을 비라고 합니다. 남자는 문득 풀러스펜으로 쓴 주소가 빗물에 번져 길 잃은 편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다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차라리 잘된 일이 아닐까, 우산도 없이 천천히 빗속을 걸어갑니다.


30여년 전에 내가 그랬고, 뭐라고 왕년에 잘 나가지 않았겠습니까만, 거리의 우체통이 지금처럼 푸대접을 받지는 않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다보니 나 또한 편지지에 편지를 쓰던 때가 아득합니다. 이메일이나 문자 메세지 따위가 우리말의 원형을 파괴하는 주범이라고 합니다. 단어의 조형을 깨트리고 문법의 질서를 흐트린다고 울분을 토합니다. 반성해야 될 현실이지요.


허지만 그보다 이메일과 핸드폰 문자 메세지가 궁극적으로 허물어뜨려 안타까운 것은 마음의 무게입니다. 편지지에 써서 전하는 사연만 진정성이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아무래도 이메일과 핸드폰 문자 메세지는 마음의 무게보다 마음의 기교에 기대어 있는 듯 합니다.

손가락으로 빠르게 치고 흔적 없이 지우며 가볍게 클릭하는 것과 손목이 시큰거리도록 꾹꾹 눌러써 발품을 팔아 부치는 것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세월이 흐르면 삭제되거나 세월이 흘러도 그 모양 그대로 보존되는 것과 생살을 찢듯 찢어버리거나 되돌릴 수 없는 시간만큼 누렇게 빛이 바래어가는 것에는 의미를 둘 만한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편지지에 편지를 쓰지 않으니 우체통은 점점 퇴물이 되어갑니다. 우체통은 무릇 일대일로 사연을 전하는 데 제 역할을 다합니다. 숙성된 마음과 발효된 시간이 은밀하게 담기는 데 우체통은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체통이 우리는 빨간색이지만, 다른 나라에는 노란색도, 파란색도 있다지요. 이제 나의 심장은 좀처럼 붉게 타오르지 않고 순수한 정열로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굳이 빨갛게 칠해놓지 않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사연들 때문에 제 스스로 붉게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을 우체통의 화려한 날은 가버렸습니다.


편지지에 정성껏 편지를 쓴다는 것, 희망을 품으며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다는 것, 조용히 비밀을 간직한다는 것, 설레며 답장을 기다린다는 것, 그리고 슬픔에 잠긴다는 것, 그 모두가 사람이기에 갖는 미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혹의 사연이 사라지고 정보와 용건만 남은 얼음장 같은 시절에는 사람이 사람답지 않은 일을 자꾸만 벌이게 됩니다. 내가 스스로 마음을 낮춰 겸손할 줄 모르니 남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나의 존재가 미약한 줄 느끼지 못하여 한없는 욕심만 품게 됩니다.


애석하지만, 나는 또다시 편지지에 '그리운 아무개에게'로 시작하는편지를 쓰지는 못할 것입니다. 동네 어귀 어디에 우체통이 서 있는지도 서서히 잊게 될 것입니다. '누구 누구전 상서'로 글문을 여는 편지도 쓸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유치한 낭만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편지를 쓰던 사람도 편지를 받던 사람도 금쪽같은 시간을 뒤쫓으며 살아갈 따름입니다.


Without You - Paul Card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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