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기제사

정윤덕 2012. 8. 22. 07:56

2011.09.18. 23:01

기제사의 유래와 의미

기일 제사는 보통 기제사 또는 기제로 약칭되고 있다. 기일이란 돌아가신 날을 말한다. 따라서 기제사는 돌아가신 날의 제사란 뜻이다. 그러므로 기제사는 한 조상에 대해 일 년에 한 번만 지낸다. 기제사는 제사의 대명사와 같아서 오늘날의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제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 고대에는 없던 것으로서 공자님도 지내지 않던 제사였다.

기일에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은 비교적 후대인 중국 송나라 때부터로 알려져 있다. 당시 유학에 새로운 학풍을 몰고 왔던 성리학자들에 의해 비로소 제사하는 풍습이 생기게 된 것이다. 북송의 사마광이 지은 서의에는 기제가 보이지 않고 남송의 주희가 지은 가례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사이에 시작된 듯하다.

제사는 본래 길례(吉禮)에 속하는 것이다. 이는 귀신에게 음식과 재물과 같은 희생물을 바치고 춤과 음악으로 그를 기쁘게 함으로써 인간이 복을 받고자 했던 일종의 축제 같은 것이었다.

동서고금에 걸쳐 제사는 떠들썩한 잔치와 같은 것이었으며 또한 이웃 사람들을 불러 음식을 대접하는 하나의 연회이기도 했다.

맹자에도 제사를 지내지 못하면 연회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제사는 신을 향사하고 신으로부터 복을 받는 대단히 즐거운 축제로서 각기 일정한 계절에 따라 정해져 있었다. 시제라고 부르는 4대조까지의 합동 제사는 4계절의 가운데 달, , 시조의 제사는 동지에, 먼 선조에 대한 제사는 입춘에, 그리고 부모의 제사는 계추(季秋) 곧 음력 9월에 지내도록 되어 있었다.

송대 이후에 지내게 된 기제사는 매우 조심스럽게 치르도록 되어 있고 친지나 이웃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절차도 없었다. 이날(기일)은 술을 마시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으며, 음악을 듣지 않고 검정 포(:두루마기 형태의 웃옷)와 흰옷을 입고 흰 띠를 두르고 지내며, 밤에는 안방에 들지 않고 사랑채에서 자도록 했다. 이것이 기일을 지내는 도리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가정에서 시제와 선조 그리고 부모에 대한 계절 제사는 행하지 않았으므로 기제사에 연희의 요소가 합쳐져 이날 손님을 초대하고 이웃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습이 생기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이날이 조상의 돌아가신 날인만큼 근신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하겠다.

기제사를 지내는 조상은 조선 전기까지는 신분에 따라 달랐지만 가례가 널리 생활화된 조선 후기 이후에는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그리고 부모에 이르기까지 4대 봉사를 하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다. 제사를 받드는 봉사자는 물론 적장자, 적장손으로 이어지는 맏이이다. 이는 제사가 직계 계승의 원리에 의해 행해지는 의례이기 때문이다.

가례를 비롯한 모든 예서에는 시제를 가장 중시하여 모든 제사의 앞에 두었고 기일 제사는 시조, 선조, 부모의 제사 뒤에 두었지만 여기에서는 기제사 위주로 설명하려 한다. 이는 고대와는 달리 현대의 거정에서는 기제사를 가장 중요한 제사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제의 중요성을 망각해서는 안 되며 그 예법을 현대의 형편에 맞게 부활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기제사의 준비

제삿날이 다가오면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은 제사에 참여할 친족들에게 두루 연락을 해야 한다. 기제사의 참석자 범위는 그 조상의 직계 후손들을 원칙으로 하지만 형제나 가까운 친지들도 참석할 수 있다. 고조부모의 제사라면 8촌 이내의 친족까지, 증조부모의 제사라면 6촌 이내의 친족까지 참석하고 조부모의 제사에는 4촌 이내의 친족들이 참석한다.

그리고 가까운 친족이나 외손들 그리고 친한 친구들도 참석할 수 있다. 조상의 제사에 참여하는 친족들은 동참하는 뜻에서 형편에 따라 한두 가지 제수나 기타 제물을 찬조하면 좋을 것이다.

제사의 주재자는 제사 하루 전 입제일에 제소 주변을 청소하고 제구와 제기를 꺼내와 깨끗이 닦고 정비하며 제사에 올릴 제주(祭酒:제사에 쓰일 술)와 제수(祭需:제사 음식)를 준비한다. 또한 제사에 필요한 모사와 향초, 향 등도 미리 준비하고 지방과 축문도 미리 써둔다. 준비가 되면 초저녁에 제사 장소에 병풍, 의자, 제상, 향안, 주가, 소탁자 등을 설치한다.

기제사의 봉행

제사를 봉행하는 절차는 매우 복잡하다.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도입단계라고 할 수 있는 식전의식{式前儀式), 본행사라 할 수 있는 제사의 집전(執典), 그리고 정리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식후의식(式後儀式)이 그것이다. 식전의식에 해당하는 것은 (1)재계(齋戒) (2)제구와 제기의 설비(陳器) (3)제수의 준비(具饌) (4)제상 차리기(陳設) (5)제복 입고(變服) 정렬하기(就位) (6)신주나 지방의 봉안(出主) 등이다. 제사의 집전에 해당하는 의식은 (1)신 내리기(降神) (2)합동참배(參神) (3)음식 올리기(陳饌) (4)첫잔 드리기(初獻)와 축문 읽기(讀祝) (5)버금잔 드리기(亞獻) (6)끝 잔 드리기(終獻) (7)식사 권유(侑食) (8)문 닫고 기다리기(閤門) (9)문 열고(開門) 차 올리기(進茶) (10)복받기(受胙:飮福) (11)합동 배례(辭神:신에 대한 작별인사) 절차가 그것이다.

식후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신주 들여 모시기(納主) (2)제상정리() (3)제사음식 나누기()가 그것이다.

기제사에는 원래 복 받기와 음식 나누기의 예가 없었지만(이는 기제사를 제외한 다른 제사에는 모두 있다) 현대에는 기제사가 가장 큰 제사이고 또 전통적으로 그렇게 해 오고 있는 까닭에 함께 수록하였다.

1. 식전의식

(1)재계(齋戒)

재계는 제사의 도입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고대에는 산재 나흘, 치재 사흘로 도합 이레나 여기에 몰두하였지만 중세에는 치재가 사흘로 단축되었다. 현대에는 사흘간이나 모든 일을 전폐하고 까다로운 재계에 몰입할 수는 없으나 최소한 하루(입제일) 정도는 재계하는 심정으로 근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재계는 몸과 마음과 주변을 정결히 하고 부정한 일에 관계하지 않으며 단정히 앉아 세상 잡사에 대한 생각을 끊고 정신을 집중하여 돌아가신 이를 추념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돌아가신 이가 눈앞에 보일 만큼 간절한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제사를 봉행해야 신이 제대로 강림하게 된다.

(2)제구와 제기의 설비: 진기(陳器)

옛날에는 제구와 제기가 매우 다양하고 그것을 설치하는 법도 복잡했지만 이제 오늘의 형편에 맞게 그 수를 줄이고 간편하게 설치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제사는 원래 사당이나 정침의 대청에서 지내던 것이지만 대청이 없는 집은 거실이나 안방을 사용한다. 우선 대청의 북쪽 벽에 병풍을 둘러치고 그 앞에 신위를 설치한다. 남향의 아닌 집은 형편에 따라 적당하게 방위를 잡도록 한다. 그러나 병풍을 친 쪽을 북으로 간주한다. 예전에는 신위에 신주를 모셨으나 오늘날에는 보통 지방으로 대체한다. 지방은 신주 모양의 목패(木牌)나 위판(位板)에 부착하여 병풍 앞 의자에 모시거나 제상의 북쪽 한가운데 봉안한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그냥 병풍한가운데에 지방을 붙여 놓아도 무방하다. 신위는 앞에는 제상을 놓는다. 제상이 없는 집은 큰 상을 사용하는 것도 무방하다. 제상 양쪽 가장자리에 촛대를 하나씩 둔다. 제상 앞에는 작은 향안을 설치하고 그 위에 향로와 향합 그리고 모사그릇을 놓는다. 향안은 형편에 따라 작은 상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 오른편에 술병, 주전자, 퇴줏그릇 및 작은 행주 등을 올려놓아 주가(酒架)를 둔다. 이 역시 작은 상으로 대체할 수 있다. 축문을 끼운 축판은 작은 상에 올리거나 함에 담아 향안의 왼편에 둔다. 향안 앞에는 화문석과 같은 자리를 깐다. 제사를 올릴 때는 이러한 제구들을 바른 위치에 배열해야 한다.

 

(3) 제수의 준비: 구찬(具饌)

제수는 주로 부인들이 준비하지만 남자들도 할 수 있는 일은 하는 것이 좋다. 제수를 준비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제수는 정성되고 정결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식을 하는 사람은 미리 목욕하고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는 것이 좋다. 머리에는 반드시 모자나 수건을 쓰도록 한다. 그리하여 밥에 돌이 들어가거나 음식에 머리카락과 비듬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4) 제상 차리기: 진설(陳設)

옛날에는 음식을 올리는 순서와 절차가 매우 복잡하였지만 오늘날에는 대체로 제사를 시작하기 전 한 번에 올리는 것이 무방하다.

 

(5) 제복 입고 정렬하기: 변복(變服)과 취위(就位)

제사지낼 시간이 되면 참여자는 모두 제복으로 갈아입고 정 위치에 정렬하여 선다. 특별히 제복을 마련하지 못했을 때는 평상복이라도 깨끗하고 단정히 입도록 한다.

제사는 주인과 주부 그리고 끝 잔 올리는 사람이 잔을 올리거나 일을 맡은 사람(집사)이 의식을 집전할 때 외에는 대청 아래 뜰에서 각자 위치를 정하여 정렬해 선다. 제사 참여자들이 정렬하는 위치는 가례에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옥 구조는 옛날과 다르고 참여자들의 수도 적으므로 형편에 따라 적절하게 하는 것이 좋다.

 

 

 

 

 

 

 

 

 

 

 

 

 

 

 

서쪽 계단

 

 

동쪽계단

 

주인의 숙모 등 모부인

(두 줄) 주부

제부자매

자부

손부

내비사자

(두 줄)

*동쪽이 상위임

 

 

주인의 숙부 등

주인 (두 줄)

형제

외집사자

(두 줄)

*서쪽이 상위임

 

주인, 주부, 헌작자, 독축자, 집사 등 직접 제수를 받들어 올리는 참사자는 정위치에 서기 전에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6)신주나 지방의 봉안: 출주(出主)

모든 제사에는 향사 대상자를 상징하나는 신위(神位)를 설치하게 된다. 신위는 돌아가신 조상을 표상한 것이다. 신위에는 옛날부터 시동(尸童), 신주(神主), 위패(位牌), 사판(祠板), 지방(紙榜) 등이 사용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사진도 사용되고 있다. 이들 신위에는 제사 중에 신이 깃들이는 것으로 믿어진다. 시동은 고대 중국의 풍습으로 어린아이에게 죽은 이의 옷을 입혀 제상 앞에 앉혀서 신위로 삼는 것이다. 신주는 나무를 위가 둥근 직육면체로 다듬어 그 위에 죽은 이의 친속과 관작, 봉사자의 이름 등을 쓴 것으로 중국 고대 이래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신위의 상징이다. 신주는 두 쪽의 나무를 맞대어 제작하는데 제도가 매우 까다롭다. 신주는 장례식 때 묘지에서 제작되어 사당에 모셔진다. 위패는 단순히 한 토막의 직육면체 나무를 다듬어 그 위에 죽은 이의 신위를 쓴 것으로 주로 불교 사찰에서 사용되고 있다. 사판은 위판(位板)이라고도 하는데 신주형태의 넓적한 목판에 죽은 이의 관작이나 호 등을 쓴 것으로 성균관, 향교, 서원, 사우 등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다.

지방은 중국 송나라 때부터 신주 대신에 일회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사용되었다. 사당의 건설이나 유지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웬만한 집이 아니면 신주를 모시지 못하였으므로 대부분의 보통 가정에서는 신주 대신 지방을 사용하였다. 지방은 제사 직전에 만들었다가 제사를 마치면 소각하기 때문에 그 제작이나 관리가 매우 간편하다. 지방은 입제일 저녁 무렵에 미리 써놓았다가 제사 직전에 신주 형태의 목패나 목판에 붙여 의자나 제상의 북쪽 한가운데에 봉안한다. 이러한 비품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병풍 위에 붙이기도 한다.

참고로 옛날의 신주 봉안법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신주는 첫새벽(새벽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한밤중이다) 날이 밝기 전에 받들어서 대청의 제소에 모신다. 주인 부부는 각각 성복을 한 다음 세수를 하고 사당 앞으로 가서 선다. 축관이 문을 열고 발을 걷어 올리면 주인은 동쪽 섬돌로 올라가서 분향하고 꿇어 엎드려 고사(告辭)를 올린다. 고사의 내용은 감히 신주를 정침으로 모셔 가기를 청합니다.” 라는 뜻으로 되어 있다. 그 후 신주를 감실에서 내어 고위와 비위를 한 광주리(혹은 작은 상)에 같이 담아서 집사자가 받들도록 한다. 주인이 앞서고 주부가 뒤따르며, 차례로 정침에 이르러 서쪽 섬돌에 있는 탁자에 둔다. 주인이 함을 열고 고위의 신주를 신위에 모시면 주부는 비위의 신주를 받들어 신위에 모신다. 신주를 받들어 모신 다음 모두 제자리로 내려와 선다.

그런데 기제사에서 신주나 지방을 봉안할 때 돌아가신 조상의 신위만을 설치할 것인지 그 배우자의 신위도 함께 설치할 것인지 하는 것은 예로부터 논란이 많았다. 대체로 이론적으로 한 분만을 봉안하는 것이 옳다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인정상 한 분만 모시기 죄송하여 배우자를 합설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한 분만을 모시는 단설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는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었다. 그는 기일 제사의 단설 근거로가례에 단설로 되어 있음을 들고 비록 정자(程子)제례에는 기일에 합설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단설하는 것이 올바른 예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예의 근본은 인정에 있는 것이니 합설로 두 분을 함께 모시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고 하였다. 합설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는 퇴계 이황(李滉)이었는데, 퇴계는 우리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합제를 행하여 오고 있었고 또한 인정으로 보아 변경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나 도암(陶菴 ) 이재(李縡)는 합설의 잘못을 심하게 비판하였다. 곧 기일은 대개 상례의 결과에 의한 것으로 조상이 돌아가신 날을 맞아서 그날 돌아가지 않은 분을 생각하여 제사를 올리는 것은 마땅하지 않으므로 합제를 하지 않더라도 인정이 박절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날 돌아가신 분에 대한 슬픔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설과 합설은 가문이나 학파에 따라서 행하는 전통이 다르지만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두 분을 같이 모시는 합설이 압도적으로 많다.

합설을 하는 경우에는 고위와 비위의 신주를 한 교의에 모시고, 제수도 한 탁자에 진설할 것이냐, 아니면 가례에 기록된 것처럼 고위와 비위를 나누어 각각 다른 교의와 탁자를 사용해야 할 것이냐 하는 점도 논란이 되었다. 이 역시 가문마다 사람마다 주장이 다르지만 대체로 교의와 탁자를 함께 사용한다.

 

2. 제사의 집전

 

지금까지 제사의 도입 단계라면 이제부터는 제사의 본론에 해당한다. 가례등에 제시된 제사 집전의 주요 절차를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옛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홀기에 적어 축() 또는 찬자(贊者)라 부르는 사회자인 집사자(執事者)가 창도하면서 제사를 진행시키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홀기를 창도할 것까지 없고 주인이 이를 메모하여 옆에 두고 보아 가며 제사를 진행시키면 좋을 것이다.

홀기(笏記)

(1) 신 내리기(降神)

(2) 합동 참배(參神)

(3) 음식 올리기(進饌)

(4) 첫잔 드리기(初獻)와 축문 읽기(讀祝)

(5) 버금 잔 드리기(亞獻)

(6) 끝 잔 드리기(終獻)

(7) 식사 권유(侑食)

(8) 문 닫고 기다리기(閤門)

(9) 문 열고(開門) 차 올리기(進茶)

(10) 복 받기(受胙:음복 飮福)

(11) 합동 배례(辭神: 신에 대한 작별 인사)

(12) 신주 들여 모시기(納主: 지방과 축문의 소각)

(13) 정리()

 

이제 이들 제사의 집전 절차에 대하여 차례로 살펴본다.

 

(1) 신 내리기: 강신(降神)

제사 드릴 신을 제소(祭所: 제상 앞)로 강림시키는 절차이다. 주인이 대청으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향로에 분향하면 집사 한 명이 술병을 열어 주전자에 따르고 나서 잔반을 가지고 주인의 왼편에 서고, 한 명은 주전자를 가지고 주인의 오른편에 선다. 주인이 무릎을 꿇고 앉으면 잔반을 든 집사도 무릎을 꿇어 그것을 주인에게 올리고, 주전자를 가진 집사 역시 무릎을 꿇고 잔에 술을 따른다. 주인은 왼손으로 잔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잔을 잡아 술을 세 번에 나누어 모사 위에 씻어 내린 후 잔과 잔대를 집사에게 준다. 이어 부복하였다가 일어나 두 번 절하고 정해진 자리로 돌아간다.

예서에 따라서는 이 강신의 절차를 이후에 행하는 참신과 순서를 바꾸어 기록한 것오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하는 집안도 많다. 그러나 일단 신이 강림해야 참배할 수 있기 때문에 강신을 먼저 하는 것이 옳다. 가례등의 예서에서 참신을 먼저 하게 한 것은 당시의 제사가 신주를 모시고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신주에는 항상 신이 깃들여 있으므로 먼저 인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2) 합동 참배: 참신(參神)

이는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합동으로 신에게 참배하는 절차로 첫 문안 인사와 같은 것이다. 제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지정된 자리에서 일제히 두 번씩 절한다. 참여자들이 서는 위치나 순서는 사당을 참배할 때와 같다. 항렬이 높은 어른으로서 늙었거나 병이 있는 사람들은 참신을 마치면 다른 곳에서 쉬어도 된다.

옛날에는 제사에서 한차례 절을 하는 횟수가 남자는 재배, 여자는 4배로 하였다. 이는 남녀를 차별하는 뜻이 아니라 음양의 원리에 의해 양의 수는 1, 음의 수는 2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산 사람에게는 양의 도를 따르기 때문에 한 번씩만 절하고, 죽은 사람에게는 음의 도를 따르기 때문에 두 번씩 절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는 음의 도에 속하기 때문에 두 번씩 두 번 절하는 것이라 하였다.

 

(3) 음식 올리기: 진찬(進饌)

이는 더운 음식을 올리는 절차이다. 주인과 주부가 대청에 올라가면 집사 한 명은 쟁반에 어육을 받들고, 또 한 명은 쟁반에 국과 밥을 받들어 대청에 오른다. 주인은 고위의 잔대 남쪽에 어육과 생선을 올리고 주부는 밥을 받들어 잔대의 서쪽에 올린 후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 절차는 다음과 같이 진행하기도 한다. 주인과 주부는 제상의 왼편에서고, 남자 집사가 육전과 초간장, 여자 집사가 면을 받들어 오면 주인은 육전과 초간장을 올리고 주부는 면을 올린다. 주인과 주부가 제상의 오른편으로 옮겨 서고 남자 집사가 어전을, 여자 집사가 떡과 편청(설탕)을 가져오면 주인은 어전을 올리고 주부가 떡과 편청을 올린다. 주부가 제상의 왼편으로 옮겨 서고 남자 집사가 국을, 여자 집사가 밥을 받들어 오면, 주인은 고위, 비위의 순으로 국을, 주부는 고위, 비위의 순으로 밥을 올린다. 그 밖에 참여자 중에 하나가 면과 편 사이에 탕을 올린다. 그러고 나서 모두 제자리에 돌아가 선다.

 

(4) 첫잔 드리기와 축문 읽기: 초헌(初獻)과 독축(讀祝)

첫잔 드리기는 신을 향사하는 의식의 시작이다. 첫잔 올리기는 반드시 그 제사의 주인이 행하며 이 첫잔을 올린 후에 축문을 읽는다. 이 절차는 제사의 핵심이며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이 대청에 오르면 집사가 주전자를 가지고 따라가서 그 오른편에 선다. 주인은 고위의 신위부터 차례로 첫잔 드리기를 행한다. 먼저 고위의 잔반을 받들어 동향하고 서면 집사가 서향하여 잔에 술을 따른다. 주인이 그것을 받들어 원래의 자리에 올리고 비위의 잔반에도 역시 이와 같이 한다. 옛날에는 초헌 때 육적을 즉석에서 화로에 굽고 소금을 발라 올렸으나 지금은 진찬 때 육적을 이미 올렸으므로 이 절차를 생략한다. 초헌이 끝나면 주인은 북향하여 부복한다.

이때 축(집사)이 축판을 가지고 주인의 왼편에 꿇어앉아 축문을 읽는다. 축문의 형식은 앞 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축문을 읽을 사람이 따로 없으면 주인이 직접 읽는다. 읽기가 끝나면 축판은 다시 소탁위에 올려놓고, 제자리로 돌아가 꿇어앉는다. 축문을 읽는 동안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엎드려 고인을 추모한다.

축문 읽기가 끝나면 옛날에는 곡()이 있었다. 곡은 직계 자손들만 하는데, 이 날이 조상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기제사에는 반드시 곡을 해야 했고 조부 이상의 조상 제사에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곡을 생략하고 있으나 이러한 예법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곡이 끝나면 주인은 일어나 두 번 절하고 물러나 제자리로 돌아간다. 집사는 잔에 담긴 술을 퇴줏그릇에 붓고 비워 놓는다.

 

(5) 버금 잔 드리기 : 아헌(亞獻)

이는 신위에 올리는 두 번째 헌작이다. 잔을 올리는 의식은 초헌 때와 같다. 다만 주부가 잔을 올리고 절할 때는 4배를 한다. 옛날에는 아헌 때 육적 대신 어적을 즉석에서 구워 올렸으나 지금은 생략한다. 아헌과 종헌에는 축문이 없다.

버금 잔 드리기는 가례류의 예서에서 모두 주부가 행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는 제사는 부부가 함께 한다(夫婦共祭).”는 정신에서 나온 예법이다. 그러나 사마광의 서의에는 주부나 형제중에 아무나 하도록 하였으므로 반드시 주부가 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자가 헌작하는 풍습이 드물었으므로 이는 주로 형제들이 행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가정 의례에서가례가 존중되고 또한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가례의 문안대로 주부가 행하는 집이 점차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주부는 제사 중에도 계속하여 올릴 음식 등을 준비해야 하고, 남자들이 많은 제소에 자주 출입하기 어려운 사정이 이었으므로 일반 가정에서 아헌은 보통 형제들이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제사의 참여자도 적고 남녀의 분별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므로 주부가 아헌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것이 예의 정신에 더 합당하기 때문이다.

 

(6) 끝 잔 드리기: 종헌(終獻)

이는 삼헌(三獻)이라고도 하며 제향에서 마지막으로 올리는 잔이다. 주인의 형제 중에서 연장자가 행하거나 장남 또는 다른 친지들 중에서도 할 수 있다. 종헌 후에는 술을 퇴주그릇에 붓지 않고 그대로 둔다.

 

(7) 식사 권유: 유식(侑食)

유식은 신에게 식사를 권유하는 절차이다. 신이 술을 다 드셨으므로 이제는 밥을 드실 차례인 것이다. 먼저 주인이 대청에 올라 술 주전자를 들고 고위와 비위의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른다. 이를 속어로 첨잔(添盞) 혹은 첨작(添酌)이라고도 한다. 이를 마치면 향안의 동남에 선다. 이어 주부가 대청에 올라 숟가락을 밥그릇 한가운데 꽂고 손잡이는 서쪽으로 향하게 하며 젓가락을 바르게 놓는다. 이를 마치면 향안의 서남에 선다. 주인과 주부가 함께 재배하고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 절차는 우리의 전통적인 의식과 조금 차이가 있다. 첨잔하는 의식은 같지만 전통 의식에는 이때 숭늉 올리기 곧 진다(進茶)가 더해진다. 밥에 숟가락을 꽂는 의식은 처음 음식을 올릴 때 함께 행하는데 이때는 국을 내보내고 대신 그 자리에 숭늉을 올린 후 꽂힌 숟가락을 뽑아 밥을 조금씩 세 번 떠서 물에 말아 놓고 숟가락은 손잡이가 서쪽으로 가게 걸쳐놓는다. 이를 낙식(落食)이라고도 한다.

유식은 일반인들이 가장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의식 가운데 하나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를 합문(閤門)의 절차와 혼동하여 문을 닫고 밖에서 부복하거나 서서 대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일부 국어 사전 등에도 그렇게 설명되어 있다. 그래서 합문 유식이라는 합성어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가례에서 말하는 유식은 첨잔하고 수저를 올린 후 재배하는 단순한 의식에 불과하다. 유식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이해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8) 문 닫고 기다리기: 합문(閤門)

이는 귀신이 안심하고 식사를 할 수 있게 사람들이 잠시 피하는 의식이다. 주인 이하가 모두 문 밖으로 나가면 사회자(집사)가 문을 닫는다. 문이 없는 곳에서는 발을 내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주인 이하 남자들은 문의 동편에서서 서쪽으로 향하고, 주부 이하 여자들은 문의 서편에서서 동으로 향하는데 이는 음식을 드시는 조상을 정면으로 향하기가 미안해서이다. 존장의 어른이 있으면 다른 곳에서 쉬도록 한다. 이것이 이른바 염()이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서서 귀신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데, 이때는 보통 9식경(9술 먹는 시간)정도를 기다린다.

합문과 개문의 절차에 대해서는 가부간 설이 분분하고 이를 행하지 않는 집도 있으므로 생략해도 무방하다. 또 여기서 말하는 문이 어떤 문이냐 하는 것도 논란이 있다. 보통은 이를 대청이나 사당의 창호로 생각하고 있으나 정약용 같은 학자는 이것이 사당의 대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문은 문이지 창호가 아니라는 것이다. 합문과 개문의 절차는 정확히 알기 어렵고, 더구나 오늘날에는 아파트와 같은 단순한 가옥 구조가 많으므로 시행하지 않아도 좋다. 또는 이 순서에 참석자들이 잠시 부복하여 대기해도 무방할 것이다.

 

(9) 문 열고 차 올리기: 개문(開門)과 진다(進茶)

닫았던 문을 다시 열고 차를 올리는 절차이다. 축이 헛기침을 세 번 하고 나서 문을 열면 주인 이하 모두가 들어간다. 다른 곳에서 쉬고 있던 존장들도 들어가서 자리에 선다. 이어 주인과 주부가 차를 받들어 각기 고위와 비위 앞에 올린다. 우리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차 대신 숭늉을 쓴다.

 

(10) 복받기: 수조(受胙)와 음복(飮福)

이는 제사를 지낸 사람이 귀신으로부터 반대로 복을 내려 받는 의식이다. 그러나 이 복 받기의 절차는 원래 기제사에는 행하지 않던 예법이다. 조상의 기일에 자손이 복을 받는다는 것이 예의 정신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다른 제사가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간략히 설명해 둔다. 가례의 복 받기[受胙]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때문에 그대로 행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오늘날에는 이를 다음과 같이 간략히 시행해도 무방할 것이다.

집사가 향안 앞에 자리를 깔면 주인이 자리에 나아가 북향한다. 다른 집사(이라고 한다)가 고위의 앞에서 잔반을 들어 주인의 오른편으로 온다. 집사가 주인에게 술 한 잔과 음식을 조금 내려 주면서, “복을 받으십시오."라고 축복한다. 주인이 잔반을 받아 술을 조금 고수레하고 나서 맛을 본 뒤 음식도 조금 맛보는 것으로 의식을 마친다. 이를 우리나라에서는 음복이라고 한다.

이상으로 제사의 집전은 일단 끝난 것이다.

 

(11) 합동 배례: 사신(辭神) - 신에 대한 작별 인사

신을 보내는 마지막 작별 인사이다. 제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일제히 두 번 절한다.

 

3. 식후 의식

(1) 신주 들여 모시기: 납주(納主) - 지방과 축문의 소각

이는 예전에 신주를 사당으로 들여 모시던 절차이다. 주인과 주부가 올라가 각기 신주를 함에 담고 주인이 그것을 광주리에 담아 사당으로 모셔 들였다. 이 의식은 사당에서 신주를 내어 올 때와 같다. 지금은 지방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이 순서에서 지방과 축문을 함께 소각한다. 이를 화송(火送)이라고도 하고 분축(焚祝)이라고도 하는데 향안 앞에서 행하고 재는 향로에 담는다.

 

(2) 제상 정리: ()

신주를 들여 모신 후 주부가 돌아와 음식을 치우고 제상을 정리하는 일을 감독한다. 제사에 사용한 잔, 주전자, 퇴주그릇 등에 있는 술은 모두 병에다 부어 보관하는데, 이것을 이른바 복주(福酒)라고 한다. 과일, 채소, 나물, 고기, 기타 음식들은 모두 일반 그릇에 옮겨 담고 제기는 잘 세척하여 보관한다. 제사에 사용된 병풍, 제상, 촛대 등 다른 제구들도 잘 정비하여 보관하도록 한다.

 

(3) 제사 음식 나누기: ()

이는 제사에 쓴 음식을 여러 친지와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절차이다. 일종의 잔치라고 할 수 있는데, 원래 기제사에는 행하지 않는 예이다. 이는 조상이 돌아가신 기일에 잔치를 벌이는 것이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제사에는 이 잔치가 행해졌다. 오늘날에는 기제사 외에 다른 제사를 행하는 경우가 거의 드물기 때문에 여기에서 간략하게 설명해 둔다.

제사에 올린 음식은 이웃과 친지들에게 싸서 보내기도 하고 집으로 초대하여 대접하기도 한다. 그것은 노소장유의 차례가 있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나누어 줌으로써 신의 은택을 함께 하도록 한다는 뜻이다. 특히 미천한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나눠 주어야 한다. 제사 음식은 또한 그날 중으로 모두 소비해야 한다. 이는 신의 은택을 묵혀서는 안 된다는 관념에서 나온 것이지만, 또한 음식이 상하기 전에 처분하려는 배려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가례에는 이 제사 음식을 나누는 연회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으나 매우 복잡하고 시행하기 어려우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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