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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정윤덕 2012. 6. 26.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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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후의 대통령들은 모두 서너브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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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후의 대통령들은 모두 서너브비치
6·25 참전유공자 중 현재 생존해 있는 분은 약 17만 명, 평균연령은 82세로 매년 1만~1만5000명이 타계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49%가 병마와 싸우고 있고 87%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한다. 국가는 이들에게 참전명예 수당으로 월 12만원을 지불하고 있다. 12만원은 얼마나 큰돈인가? 기초생활보장법이 정한 1인당 최저생계비가 55만3,000원이다.

 

호주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들 중에는 6.25참전용사도 있고, 월남참전용사도 있다. 그런데 그 분들은 호주정부로부터 호주군 참전자 용사와 똑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매월 2,200달러(250만원), 의료비 전액면제, 각종 세금 면제 등등. 이 분들은 대한민국의 장병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는데 어떻게 남의 나라인 호주가 이런 기막힌 대접을 해주고 있는가? 호주 정부의 대답은 이러하다.

“6.25전쟁과 월남전쟁은 인류 공공의 적인 공산주의와 싸운 전쟁이다. 공산주의와 싸운 세계의 전사들이 호주에 와서 정착했는데 호주정부가 어찌 이들을 호주군 참전 용사와 차별할 수 있겠는가?”

호주의 1인당 GNP는 우리의 2배를 조금 넘는다. 하지만 호주정부는 우리의 월남참전 전우들이 이민했을 1975년 직후에서부터 이렇게 했다. 이후 38년이 지났지만 우리 한국이라는 쌍놈의 나라는 겨우 12만원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박대통령과 전두환 시절에 유죄판결을 받았던 빨갱이들이 모두 유공자로 등극되어 심지어는 왕재산 간첩들에게까지 수백-수천만원을 제공해주었고, 3-5공 시절에 발생했던 22개 간첩 및 국보법 위반사건들을 재심하여 1인당 많게는 7억원씩을 보상해주었다. 그들 모두가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했고, 그들 모두가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싸운 민주화 투사라는 것이 유일한 이유다.

2010년 6월 30일자 조선일보에 의하면 북한에서 간첩교육을 받고 김일성과 손잡고 국가파괴를 일삼아 온 역적 곽동의(80, 김대중의 동지)에게 재일학도의용군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2006년부터 2010년 6월 당시까지 보훈 보상금 5,229만원을 지급했다.

5.18때 경찰 15명을 인질로 잡은 것을 민주화 공로로 인정하여 1980년대에 2억을 주었고 그는 그걸 가지고 북한으로 갔다.


2012.6.25. 대한민국대청소 500백만야전군 의장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빨갱이들의 입버릇, “고문조작 사건”의 진실


해방 후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조선 백성에 악행을 했던 친일파에 대한 국민의 원성이 대단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이승만 정부는 1949년 1월 8일 반민특위를 만들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활동력이 뛰어난 빨갱이들이 대거 먼저 들어갔다. 이들 빨갱이들은 이승만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물고 늘어졌다.

1949년 3월, 드디어 빨갱이들의 마수가 드러났다. “남로당국회프락치사건”이 터진 것이다. 1948년 5월 10일에 형성된 제헌국회에 빨갱이들이 대거 당선되어 국회에 프락치 조직을 만들어 놓고 ‘민족자결주의’의 이름 아래 ‘외국군대철수안’(김구안), ‘남북통일협상안’ 등 공산당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을 한 것이다.

이로 인해 당시 국회부의장 김약수 등 13명이 1949년 4월 말∼8월 중순까지 3차에 걸쳐 검거됐다. 수사결과 관련 의원들은 남로당 특수공작원인 이삼혁 ·이재남 ·김사필 ·정재한, 남로당 중앙간부 박시현 등과 접선을 하고 있었다. 검찰은 정재한이 월북한 박헌영에게 보내는 보고서인 국회 내 남로당 의원의 프락치 비밀공작보고가 담긴 암호문서를 증거로 제시했다.

같은 해 6월 19일부터는 헌병사령부에 국회프락치사건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었고, 1950년 2월 10일, 13명 전원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최고 징역 12년형에서 최하 2년형까지 선고하였다. 1949.6·6. 경찰은 빨갱이 조직으로 되어 버린 반민특위를 습격하였고, 동년 9.22일, 반민특위의 폐기법안으로 완전폐지 되었다. 빨갱이들은 이를 근거 없는 뒤집어씌우기 공작이요 고문조작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박원순 도 1989년 가을호에서 “국회프락치사건은 고문에 의해 날조, 조작된 것으로 국회 소장파 의원들이 이승만 정권과 국회 내의 반대세력인 한민당 세력의 합작에 의해 정치적으로 제거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6.25남침으로 서용길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 월북했다. 그리고
1997년 5월 26일자 로동신문은 국회프락치 사건을 간첩 성시백이 배후조종했다고 썼다.

 

“국회 안에서 민족적 감정과 반미의식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들로 진지를 구축하고 여기에 다른 국회의원들까지 포섭하여 국회부의장과 수 십 명의 국회의원들을 쟁취 포섭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외군철퇴요청안’과 ‘남북화평통일안’을 발표케 함으로써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들을 수세와 궁지에 몰아넣고 남조선인민들에게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었다”

전 북한군 대좌로 전향한 거물간첩 김용규는 1999년 11월에 내놓은 그의 저서 “소리 없는 전쟁”에서 “남한에서 발생한 모든 소요사건에는 반드시 북의 조종이 있다”는 것은 의심 할 수 없는 필연“이라고 증언했다.


빨갱이 대법원장 이용훈이 뒤집은 22개 재심사건, 고문조작 사건 아닐 것

이용훈이 대법원장을 할 때 사법부는 완전히 빨갱이 판사들이 장악했다. 빨갱이 판사들이 인사권과 사건 배당권을 거머쥐었고, 시국사건을 배당받은 일반 판사들은 인사권을 쥔 빨갱이들의 노선을 부합하는 판결을 해야 보신을 할 수 있었다. 이용훈은 3-5공 시절에 있었던 큼직한 좌익사건 22개를 모두 재심에 회부했고, 이 재심 사건들은 모두 빨갱이 판사들에 배당됐다.

22개 사건 모두가 예외 없이 재심에서 승소했고, 판결을 맡은 판사들은 왕년의 간첩들에게 절을 하며 국가를 대신해 사과했다. 이들이 왕년의 판결을 뒤집은 이유는 하나 같이 다 “독재정권에 의한 고문조작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1인당 몇 억 원씩의 보상금이 주어졌다. 이런 돈으로 빨갱이들은 지금 떵떵거리며 기득권 행세를 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이런 판결을 반드시 다시 뒤집어야 할 것이다.


2012.6.25. 대한민국대청소 500백만야전군 의장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想起하자 6.25 戰爭

오늘은 6.25전쟁 62주년이 되겠습니다.

想起하자 6.25 戰爭

※아래 표시하기를 클릭해야만 동영상이 나옵니다

6.25 動亂 參戰 犧牲者

美國軍은

전사자 33,665명

비전투 희생자 3,275을 포함하여

총 36,940명의 젊은 목숨을 바쳤다.

또한 103,284건의 작전에서 92,134 명의 전상자를 냈으며

총 1,789,000명의 미군이 1950.6.25일부터

1953.7.27일까지 한국전쟁에 참전 했으며

아직도 8,176명의 실종자를 남기고 있다.

韓國軍은

전사자 415,004명을 포함하여

총 1,312,836 명의 희생자를 냈으며

U.N 軍은

전사자 3.094명을 포함 총 16,532명이 희생되었다.

♣♣6.25 전쟁의 참상

상기하자 !! 6.25

한 여류시인이 제공한 6.25전쟁 참상

1950

< 신문 보도 내용 >

주한 미군 기지관리사령부

사진 150 · 동영상 40여개 인터넷 공개

< 2009. 1. 6 >

6·25전쟁 당시 미군 사진사들과 카메라맨들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됐다.

6일 미 군사전문지인 성조지(Stars and Stripes)에 따르면,

주한미군 기지관리사령부(IMCOM-K)는 미 국방부 자료실로부터

6·25 전쟁 관련 동영상 40여개와 사진 150장을 입수,

웹사이트에 올렸다.

기지관리사령부 공보관 에드워드 존슨씨는

"이들 사진과 동영상들은 한국전과 그 이후 시기에 대한

역사적 정보의 보고(寶庫)"

라고 말했다고 성조지는 전했다.

사진에는 전쟁 중 폐허로 변한 도시의 모습과

한국군·미군의 전투 모습 등이 다양한 형태로 담겨 있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전장 시찰,

인기 코미디언 보브 호프와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미군을 위문하는 장면 등도 포함돼 있다.

동영상 가운데는 6·25 전쟁 격전지의 전투는 물론,

25전쟁 후 한국민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내용도 들어 있다.

사진은 http://www.flickr.com/photos/imcomkorea/sets/72157607808414225/에서,

동영상은http://kr.youtube.com/warinkorea에서 볼 수 있다.

1. men of the 24th Inf. Regt. move up to the firing line in Korea.

July 18, 1950. Breeding. (Army)

24 보병연대가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2. Railroad cars loaded with barbed wire at Taegu

RTO (Railway Transportation Office), Korea.

July 24, 1950. Sgt. Riley. (Army)

철조망을 싣고 대구역을 출발하는 화물 열차.

3. Wounded American soldiers are given medical treatment

at a first aid station, somewhere in Korea.

July 25, 1950. Pfc. Tom Nebbia. (Army)

부상병이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4. Pfc. Orvin L. Morris, 27th Regiment, takes a much

deserved rest during his evacuation to Pusan, Korea,

on a hospital train. He was wounded by enemy mortar fire on front lines.

July 29, 1950. Sgt. Dunlap. (Army)

북한군의 박격포 공격으로 부상 당한 병사가

부산으로 이동하는 열차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5. United Nations flag waves over crowd waiting to hear

Dr. Syngman Rhee speak to the United Nations Council in Taegu, Korea.

July 30, 1950. Sgt. Girard. (ARmy)

대구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위해 군중이 모여 있다

6. U.S. Marines stand along the rail and watch the ocean aboard the USS Clymer.

To the aft a Marine is washing his dungarees

by dragging them along behind the ship.

July 1950. Sgt. Frank C. Kerr. (Marine Corps)

해군 병사들이 난간에 기대어 쉬고 있다

7. Three BD-110A switchboards on left and one BD-96 on extreme right being operated by Pfc.

James Grahn of Co. B, 71st Sig. Svc. Bn., Pusan, Korea.

August 1, 1950. Cpl. Crowe. (Army)

3개의 BD-100ABD-96을 제임스가 조작하고 있다

8. U.S. troops are pictured on pier after debarking from ship,

somewhere in Korea.

August 6, 1950. Sgt. Dunlap. (Army)

상륙후 부두에서 쉬고 있는 미군 병사들

9. Pfc. Clarence Whitmore, voice radio operator,

24th Infantry Regiment, reads the latest news while enjoying

chow during lull in battle, near Sangju, Korea.

August 9, 1950. Pfc. Charles Fabiszak, Army. (USIA)

전투가 소강 상태일 때 무전병이

신문을 보며 음식을 먹고 있다

10. Fresh and eager U.S. Marine troops, newly-arrived at the vital southern

supply port of Pusan, are shown prior to moving up to the front lines.

August 1950. INP. (USIA)

새로 도착한 미 해병 대원들이 전선으로 이동하기 전의 모습

11. How a man died on the way to Maeson Dong.

September 2, 1950. Sgt. Turnbull. (Army)

전사자 모습

12. Men of the 9th Inf. Regt. man an M-26 tank to await an enemy attempt to cross the Naktong River.

September 3, 1950. Cpl. Thomas Marotta. (Army)

9보병연대 병사들과 M26 탱크가

북한군의 낙동강 도강에 대비히고 있다

13. North Korean prisoner of Marines who rolled enemy back in Naktong River fighting.

He wear a "Prisoner of War" tag and was treated in accordance

with United Nations' rules of international warfare.

September 4, 1950. S. Sgt. Walter W. Frank. (Marine Corps)

북한군포로의 모습, 그는 전쟁 포로라는

판을 목에걸고 유엔법에 따라 관리되었다

14. Landing craft loaded with Marines head for the smoking beach in invasion of Inchon,

September 15, 1950. Sgt. Frank C. Kerr. (Marine Corps)

해병대를 태운 상륙정이 인천 해변으로 향하고 있다

15. Invasion of Ichon, Korea. Four LST's unload men and equipment on beach.

Three of the LST's shown are LST-611, LST-745, and LST-715.

September 15, 1950. C.K. Rose. (Navy)

4척의 상륙정으로부터 병력과 장비가 내려지고 있다

16. Carrying scaling ladders, U.S. Marines in landing crafts head for the seawall at Inchon.

September 15, 1950. S.Sgt. W. W. Frank. (Marine Corps)

사다리를 싣고 인천 상륙을 위해 상륙정에 승선한 해병들

17. Leathernecks lead patrol between destroyed buildings

in "mop-up" of Wolmi Island, gateway to Inchon.

September 15, 1950. Sgt. Frank C. Kerr. (Marine Corps)

인천의 관문인 을미도에서 북한군을 소탕 중인 해병대

18. As against "The Shores of Tripoli" in the Marine Hymn,

Leathernecks use scaling ladders to storm ashore at Inchon in amphibious invasion

September 15, 1950. The attack was so swift that casualties were surprisingly low.

S.Sgt. W.W. Frank. (Marine Corps)

해병들이 사다리를 이용해 인천 해안에 상륙하고 있다.

이 공격은 신속했으며 부상자는 놀랄 정도로 적었다

19. Brig. Gen. Courtney Whitney; Gen. Douglas MacArthur,

Commander in Chief of U.N. Forces; and Maj. Gen. Edward M.

Almond observe the shelling of Inchon from the U.S.S. Mt. McKinley,

September 15, 1950. Nutter (Army)

상륙 작전중 인천 해안을 살피는 맥아더 사령관

20. A small South Korean child sits alone in the street,

after elements of the 1st Marine Div. and South Korean Marines invaded the city of Inchon,

in an offensive launched against the North Korean forces in that area.

September 16, 1950. Pfc. Ronald L. Hancock. (Army)

어린 소녀가 길가에 앉아 울고있다.

미해병과 한국 해병이 인천에 상륙한 직후

21. Al Jolson entertains U.S. troops at Pusan Stadium during his visit to the fighting front.

He died shortly after his return from Koera where he gave of his talent untirigly and unceasingly.

He made the trip at his own expense.

September 17, 1950. Kondreck. (Army)

al jolson부산 운동장에서 공연을 하고있다

그는 자비로 공연을 했으며 한국에서 돌아간 직후 사망했다

22. Wreckage of big transport which North Koreans hit while it was on Kimpo Airfield,

is again in friendly hands, upon recapture of field.

September 18, 1950. Sgt. Frank C. Kerr. (Marine Corps)

북한군의 공격으로 김포 공항에서 파괴된 비행기가

1950918일 다시 미군의 손에 들어왔다.

23. Troops of the 31st Inf. Regt. land at Inchon Harbor, Korea, aboard LST's.

September 18, 1950. Hunkins. (Army)

31연대 병력이 인천에 상륙하고 있다

24. Two North Korean boys, serving in the North Korean Army,

taken prisoner in the Sindang-dong area by elements of the 389th Inf. Regt.,

are interrogated by a U.S. soldier shortly after their capture.

September 18, 1950. Pfc. Francis Mullin. (Army)

신당동에서 미군에 잡힌 북한 소년병이 신문을 받고 있다

25. Pfc. Thomas Conlon, 21st Inf. Regt., lies on a stretcher at a medical aid station,

after being wonunded while crossing the Naktong River in Korea.

September 19, 1950. Cpl. Dennis P. Buckley. (Army)

낙동강을 건너다 부상 당한 병사가 들것에 누워 있다

26. United Nations troops fighting in the streets of Seoul, Korea.

September 20, 1950. Lt. Robert L. Strickland and Cpl. John Romanowski. (Army)

시가전 중인 유엔군

27. A U.S. Marine tank follows a line of prisoners of war down a village street.

September 26, 1950. S. Sgt. John Babyak, Jr. (Marine Corps)

탱크가 포로 행렬을 따르고 있다

28. 55arine Pvt. 1st Class Luther Leguire raises U.S. Flag at American consulate in Seoul,

while fighting for the city raged around the compound.

September 27, 1950. Sgt. John Babyak, Jr. (Marine Corps)

미영사관에 성조기를 게양하고 있다

29. A Korean family mourns their murdered father, victim of the

wholesale murder at Chonju by North Koreans.

September 27, 1950. M. Sgt. E. T. Tarr. (Army)

북한군에 의해 대량 학살된 시신 옆에서 오열하고 있는 한국인

30. The wreckage of a bridge and North Korean Communist tank south of Suwon, Korea.

The tank was caught on a bridge and put out of action by the Air Force.

October 7, 1950. Marks. (Army)

공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다리 위의 탱크

31. ROK military police pose before the ruins of a devastated building in Pohang.

Most buildings that housed red troops were destroyed.

October 17, 1950. (Navy)

한국군 헌병이 무너진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32. Scene of war damage in residential section of Seoul, Korea.

The capitol building can be seen in the background (right).

October 18, 1950. Sfc. Cecil Riley. (Army)

서울의 주거지의 파괴된 모습.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33. Officers and men of the 62nd Engineers stand in front of the first train to

cross the new railroad bridge which they built across the Han River at Seoul, Korea.

October 19, 1950. Sfc. Albert Guyette. (Army)

한강에 새로 건설된 철교에 처음으로

지나가는 기차 앞에서 62공병대 병사들과 사병들

34. A 16-inche salvo from the USS Missouri at Chong Jin, Korea,

in effort to cut Northern Korean communications. Chong Jin is only 39 miles from the border of China.

October 21, 1950. (Navy)

북한군의 통신 단절을 위한 청진에서 16인치포 일제사격,

청진은 중국에서 39마일 떨어져 있다

35. Audience reaction to the Bob Hope show at Seoul, Korea.

October 23, 1950. Capt. Bloomquist. (Army)

밥 호프의 공연을 보며 웃고 있는 병사들.

36. Navy Sky Raiders from the USS Valley Forge fire 5-inch

wing rockets at North Korean communist field positions.

October 24, 1950. PhoM3c. Burke. (Navy)

북한군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미해군 전투기

37. The Hon. S.Y. Lee, Vice President of South Korea, leads

cheers at the close of the UN Day ceremony at Seoul.

October 24, 1950. Sgt. Ray Turnbull. (Army)

유엔의 날에 마지막에 한국의 부통령(이시영)이 만세를 선창하고 있다

38. Bob Hope, radio and screen star, sits with men of X Corps,

as members of his troupe enterain at Womsan, Korea.

October 26, 1950. Cpl. Alex Klein. (Army)

위문 공연을 온 밥 호프와 함께 포즈를 취한 병사들

39. A refugee family from Ching Pung Men near Masan,

now living in a refugee camp at Changseung-po, Korea.

October 1950. United Nations. (USIA)

마산 근처의 ching pung면에서 피난 온 가족.

지금은 장생포에 있다

40. An aged Korean woman pauses in her search for salvageable

materials among the ruins of Seoul, Korea.

November 1, 1950. Capt. C. W. Huff. (Army)

폐허가된 서울에서 할머니가 쓸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41. Korean women and children search the rubble of Seoul for

anything that can be used or burned as fuel.

November 1, 1950. Capt. F. L. Scheiber. (Army)

아주머니와 아이들이 땔감을 찾고 있다

42. Miss Mo Yun Sook, famed Korean poetess,

is telling how she escaped the Communist-led North Koreans

when they captured Seoul, by hiding in the mountains until the U.N. forces liberated the city.

November 8, 1950. Cpl. Robert Dangel. (Army)

한국의 여류시인 모윤숙이 어떻게

북한군 치하의 서울에서 탈출했는지 말하고 있다

유엔군이 올때까지 산에 숨어 지냈다

43. Navy AD-3 dive bomber pulls out of dive after dropping a 2000 lb.

bomb on Korean side of a bridge crossing the Yalu River at Sinuiju, into Manchuria.

Note: anti-aircraft gun emplacement on both sides of the river.

November 15, 1950. (Navy)

미해군 폭격기가 신의주 압록강 다리를 폭격하고 있다

44. Homeless, this brother and sister search empty cans for morsels of food,

and try to keep warm beside a small fire in the Seoul, Korea, railroad yards.

November 17, 1950. Pfc. Fulton. (Army)

아이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작은불 옆에 있다.

45. Fighting with the 2nd Inf. Div. north of the Chongchon River,

Sfc. Major Cleveland, weapons squad leader, points out

communist-led North Korean position to his machine gun crew.

November 20, 1950. Pfc. James Cox. (Army)

청천강에서 북한군 진지를 겨냥하고 있는 병사들

46. M/Sgt. George Miller selects human blood for patient at the

8076th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 at Kunr-ri, Korea.

November 27, 1950. Cpl.Fred Rice. (Army)

환자들을 위해서 조지 밀러가 피를 모으고 있다

47. A wounded chaplain reads a memorial service over

the snow-covered bodies of dead Marines. Koto-ri, Korea.

December 3, 1950. Cpl. W. T. Wolfe. (Marine Corps)

부상당한 목사님이 전사한 해병들을 위해 추도식을 거행하고 있다.

48. These men of the Heavy Mortar Co., 7th Inf. Regt., go native,

cooking rice in their foxhole in the Kagae-dong area, Korea.

December 7, 1950. Pfc. Donald Dunbar. (Army)

밥을 짖고 있는 세 병사

49. Wounded soldiers use wheelchairs and crutches

until they learn how to walk with a synthetic limb.

Pfc. Charles Woody, injured near Taegu, walks on crutches.

Walter Reed Mil. Hosp. Washington, DC.

December 8, 1950. T. Sgt. Trehearne,

USAF; PhoM2c. Knudsen, USN. (USIA)

부상 당한 병사들은 의족 의수를 어떻게 쓰는지

익숙해 질 때 까지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했다

50. Supplies and equipment are also evacuated from the onslaught of the

Communist Forces bearing down on Hungnam, Korea.

December 11, 1950. Pfc. Emerich M. Christ. (Army)

공산군의 맹공으로 흥남에서 철수하는 보급품과 장비들

51. A U.N. LST slips into the harbor at Inchon prior to invasion by U.S. Marines.

December 13, 1950. (Navy)

UN군의 LST가 인천항으로 들어가고 있다.

52. Marines of the First Marine Division pay their respects to fallen buddies during

memorial services at the division's cemetery at Hamhung, Korea,

following the break-out from Chosin Reservoir,

December 13, 1950. Cpl. Uthe. (Marine Corps)

전사한 미해병들의 무덤에서 추도 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53. Marines of the First Marine Division pay their respects to fallen buddies

during memorial services at the division's cemetery at Hamhung, Korea,

following the break-out from Chosin Reservoir,

December 13, 1950. Cpl. Uthe. (Marine Corps)

전사한 미해병들의 무덤에서 추도 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54. President Harry S. Truman is shown at his desk at the White House

signing a proclamation declaring a national emergency.

December 16, 1950. Acme. (USIA)

투루먼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 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55. North Korean refugees use anything that will float to evacuate Hungnam.

Here they jam the decks of a South Korean LST and many fishing boats.

December 19, 1950. (Navy)

북한의 피난민들이 흥남을 떠나고 있다.

56. Korean natives prepare to board an LST during the evacuation of Hungnam,

while other refugees unload some of their meager belongings

from an ox-cart and load them on a fishing boat.

December 19, 1950. (Navy)

피난민들이 LST에 승선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피난민들은 우마차에서 짐을 내려 어선에 옮기고 있다.

57. The USS Missouri fires 16-inch shell into enemy lines at Hungnam.

A 16-inch 3-gun salvo is on its way to commies.

December 26, 1950. (Navy)

흥남으로 함폭 사격 중인 미해군

58. U.S. Marines move forward after effective close-air support flushes

out the enemy from their hillside entrenchments.

Billows of smoke rise skyward from the target area. Hagaru-ri.

December 26, 1950. Cpl. McDonald. (Marine Corps)

전투기의 근접 지원 후 전진 중인 미해병

59. Astonished Marines of the 5th and 7th Regiments,

who hurled back a surprise onslaught by three Chinese communist divisions,

hear that they are to withdraw! Ca.

December 1950. Sgt. Frank C. Kerr. (Marine Corps)

중공군의 맹공에 후퇴하는 미군

60. Jacob A. Malik, Soviet representative on the U.N. Security Council,

raises his hand to cast the only dissenting vote to the resolution calling

on the Chinese Communists to withdraw troops from Korea. Lake Success, NY.

December 1950. INP. (USIA)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한국에서

중공군의 철수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지는 소련 대표

61. North Korean prisoners, taken by the Marines in a foothills fight,

march single file across a rice paddy.

1950 (Marine Corps)

논을 따라 이동중인 북한군 포로들

62. U.S. Marines guarding three captured North Koreans, ca.

1950. Sgt. W. M. Compton. (Marine Corps)

미해병이 지키고 있는 북한군 포로

63. Crossing the 38th parallel. United Nations forces withdraw from Pyongyang,

the North Korean capital. They recrossed the 38th parallel.

1950. (USIA)

평양으로부터 철수하여 38선을 건너는 유엔군

64. Leatherneck machine gun crew dug in for the night in Korea. Ca.

1950. (Marine Corps)

참호에 있는 미해병

65. Marine Corps tanks - ready for the front lines - are

swung aboard a barge at the Naval Supply Center by crane,

for transhipment to our forces in the Pacific Far Eastern Command. Oakland, CA,

1950. Acme. (USIA)

극동태평양사령부로부터 보급된 탱크가 항구로 내려지고 있다

66. During South Korean evacuation of Suwon Airfield, a 37-mm anti-tank

gun is hauled out of the area for repairs, by a weapons carrier.

1950. INP. (USIA)

수원비행장의 한국인들이 철수하는 동안

대전차포가 수리를 위해 트럭에 의해 이동되고 있다

67. San Diego, Calif. A young officer and his wife sitting in their car at the

dock and staring quietly at the waiting aircraft carrier before he leaves for Korea.

1950. Black Star. (USIA)

한 장교의 그의 아내가 자동차에 조용히 앉아서

장교가 한국으로 타고 갈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68. Cpl. John W. Simms of Bradbury Heights,

MD, is shown bidding his wife, Ann,

and their 8-month-old son, John Jr., goodbye as he leaves for Korea,

1950. Washington Post. (USIA)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 미군 병사

Without You / Paul Cardall


1950. 6. 18. 6.25 전쟁 발발 일주일 전 의정부 북방 38 접경에서

미 국무장관 덜레스(가운데) 일행이

38선 너머 북쪽을 살피고 있다(덜레스 오른쪽 신성모 국방장관)

1950. 8. 18. 백선엽 장군(가운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다.

남하하는 피난민 행열

1950. 8. 15. 창녕 남지철교. 국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핏빛으로

강물이 물들 만큼 피아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격전의 현장이었다

1950. 8. 15.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8.15 경축식을 끝낸 후

임시 국회의사당인 문화극장을 떠나고 있다.

1950.9. 15. 인천상륙작전을 함상에서 진두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

1950.9.15 인천상륙작전

1950. 9. 15. 인천 월미도로 상륙하는 함정들

1950. 9. 16. 인천부두로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

1950. 9. 23. 서울 탈환을 눈앞에 둔 노량진에서 바라본

끊어진 한강 철교

1950. 9. 25. 한강 도하 작전

1950. 9. 27. 경인가도에서 국군 수복을 환영하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1950.9.28 중앙청에 태극기 계양하는 해병대용사들

1950. 9. 29. 태극기 펄럭이는 중앙청

1950. 9. 29. 서울 탈환 환영대회 직전의 중앙청 홀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맥아더 장군

철모쓴 어린이들

민족의 비극 6.25를 결코 잊어서는 안됨니다
또 이땅에 6.25와 같은 이념 전쟁은 없어야 됨니다

종북세력은 각성하고 민족 분열을 야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들이 6.25나 경험해 보았습니까?
이만큼 배 따시게 사는 당신들이 있기까지는 수많은 영령들의

피값입니다.

6.25가 코앞으로 닥아왔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나를위해 먼저 산화한 영령들께 머리숙여

묵념합시다
결코 6.25를 잊어서는 안됨니다.

1950년 6월 25일은 일요일이었고 비가 왔습니다.

강릉시에 스피커를 단 짚차에서 휴가나온 장병은

빨리 귀대하라고 방송하는 소리를 온 시민이

들었습니다. 남에서 북으로 쳐들어 갔다면 부대

장병들이 휴가를 나왔을리 없습니다.

강릉시민이 다 들었습니다.

일부 초중고에서 남에서 북으로 쳐들어갔다고

가르치는데 기막힌 교육현장입니다.

초중고생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점검해

보십시오.

서울시민들도 이날 방송을 들은 분들이 많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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