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당신
아침에 눈뜨면
내 옆 화장기 없는 푸시시한 얼굴에서
갓 색시때의 아내를 그려보고
행복의 의미를 되새긴다.
이 나이에
한 이불 아니면 안 되었고
손가락 하나라도 잡지 않으면
잠들지 못했던 나, 당신
그래서 오늘도 행복을 느낀다.
넉넉하진 못하지만
공기 맑은 팔공산 자락 아담한 아파트에
연금 타 분수에 맞게 살아왔고
두 자식 출가시켜 손자 손녀 안아 봤으니
더 이상 욕심은 금물.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
열무김치 고추장에 비벼
찢어질 듯 입속에 감추고
이마 맺힌 땀 씻어주며
서로에게 감사하는 행복.
홍두깨로 밀어 만든 손국수에
호박 열무 넣어 끓여
가까운 친구 내외 불러와
후후 불며 먹는 재미
이 즐거움이 행복이련가.
기다리는 여자 친구는 없지만
내 손길 기다리는 30만 꿀벌들
상추 쑥갓 얼갈이 무와 배추
고추 오이 토마토 옥수수
매주 두번 땀으로 만나
가을 김장 내 손으로 장만하니
이것 또한 신이 주신 행운이라오.
게으름을 피우다
빠뜨리기 일수지만
손잡고 걷는 산책에
돌 위에 걸터 앉아
초저녁 달을 보는 운치도
나, 당신만의 복이었지.
나, 당신
함께 한 40여년
기쁨도 어려움도 많았고
고비마다 묵묵히 이겨낸 당신 있어
보람의 내일이 행복하다오.
어느 햇살 좋은 날
드문드문 돋기 시작한
하얀 머리카락을 염색해 주며
무심히 했던 말
그래도 나, 당신밖에 없노라고
그래도 당신, 나 밖에 없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