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23. 19:37 http://cafe.daum.net/62ansa/1yv8/738
끝까지 읽어 주기를 기대하며 아! 대청봉 산행계획. 10월16일 월요일 오후8시. 한 시간이나 먼저 출발지에 도착했다. 뜻을 같이한 김창웅, 황학노, 장예덕동지 내외 그리고 나 설악산 3박4일간의 그 엄청난 산행을 위하여... 16일 오후 9시출발 새벽 한시 낙산사 유스호스텔에서 1박 17일 새벽 6시 간단한 식사, 그리고 백담사 거쳐 영시암, 오세암가서 1박, 18일 오세암에서 봉정암으로 가 다시 1박. 19일 대청봉 거쳐 천불동계곡으로 하산 대구행 예정은 이러했다. 요것쯤이야 따라가지 않겠냐(?) 겁도 났지만 늘 산에 다니면서 꼭 한 번 오르고 싶었던 대청봉이었다. 이번 기회를 놓지면 다시는 밟을 수 없을 것 같아 신청을 했다. 무식이 용감했다. 계획대로 16일 밤 9시 광장코아를 출발 중앙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 영동고속 마지막 현남IC를 거쳐 낙산유스호스텔에 1시반경 도착 다인실에서 선잠을 청했다. 17일 새벽 한 잠도 못잔 부시시한 얼굴로 식당행, 간단한 아침에 주먹 밥 하나씩 배식. 차에 올라 지난 7,8월의 수해로 생채기가 난 한계령 고갯길을 올랐다., 정말 처참했다. 9월 말에 겨우 가개통한 길을 따라 오색 약수터를 거쳐 한계령 꼭대기에 모두 하차. 예정에 없던 한계령 코스로 등산 한단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등산코스중 가장 난코스로 유명한 한계령 코스를 초행인 우리에게 걸어라 한다니..... 무식이 용감했다. 차는 백담사로 떠나며 다음날 오후 1시에 백담사에서 만나자고 했다. 안개낀 한계령 100여 계단을 밟아 올라 등산신고소에 도착 7시 30분 등산이 시작됐다.
천애고아 황동지와 함께 중간 후미에서 걸었다. 지금부터는 이 험한 산에서 나 하나밖엔 없다.오직 한 걸음, 한 발짝 한 발짝씩 조심스럽게 전진만이 살길이었다. 출발부터 두 시간, 이는 온통 계속 오르막 뿐이었다. 처음은 두 발로 가능했다. 스틱조차 준비 못한 나로서는 어찔 수 없이 네발로 걸어야 했다. 지팡이 하나가 이렇게 소중할 줄 미쳐 몰랐다. 하는 수 없이 짧은 막대 하나를 장만해야만 했다. 장동지와 김동지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숨을 헐떡이며 계속 걷기만 했다. 황동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결코 시계는 보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흐린 날씨에 바람이 불어와 땀은 흘리지 않아 좋았다. 오르막의 막바지 우리 둘은 산 마루에 올라 섰다. 아! 이래서 산에들 오는구나. 펼쳐진 장관 장관들...꼬불꼬불 올라온 한계령 고개길, 멀리 펼쳐진 설악산의 기암절벽들, 단풍은 지고 없었지만 숨 헐떡이며 올라온 보람은 상쾌했다. 지금부터는 능선을 걷게 된다. 오르막 내리막 계속 이어지는 능선 길, 그래도 숨찬 처음 두 시간은 잘 견디어 오지 않았는가? 40명의 일행중 처사(남)는 7명 그 외는 모두 보살(여)이다. 보살중에는 70노인도 보였다. 모두들 잘도 내 앞을 앞지른다. 앉아 물을 마실틈도 없다. 간식으로 가져온 사탕을 걸어면서 먹는다. 친구와 함께 걷지만 믿을건 오직 내 다리뿐이다. 집사람도 아들손자도 대신 걸어줄 수 없다. 내 뒤를 걷는 황동지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또 걷는다. 얼마쯤 왔을까? 이제 시계를 본다. 출발한 지 3시간이 흘렀다. 반쯤은 왔겠구나. 주최측에서 준 사과를 먹는다. 이 맛이야! 같이 걷는 보살님이 오이를 깍아 준다. 산에 온 모두는 한 마음 한 가족이다. 서로 격려하며 또 걷는다. 저 멀리 산꼭데기에 희고 큰 둥근 것이 보인다. 중청봉 이란다. 나에게는 희망봉이었다. 왼쪽 무릎이 조금 저려온다. 준비해 간 파스를 붙인다. 일행중 한 분이 케토톱을 주며 붙이란다. 정말 고맙다. 베품이 습관화된 분들일까? 능선길을 계속 걷는다. 칼처럼 뽀쭉한 바위를 건너뛴다. 줄을 잡고 바위틈을 기어 오른다. 출발한 지 벌써 6시간, 우리는 끝청봉에 올랐다. 바로 앞이 중청봉 그리고 대망의 대청봉! 끝청봉에서 바라본 설악산, 그 웅장함과 계곡의 기암들, 이래서 설악 설악 하는 구나. 내가 이제 너희들을 접수한다. 함께와 이 장관을 보지 못 한 집사람이 생각난다. 자 다시 힘을 내자. 끝청봉 부터는 힘들지 않는 길이었다. 저기 중청봉 대피소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 다 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중청봉의 군사 전파망을 왼쪽으로 길을 재촉해 마침내 나는 중청대피소에 도착했다. 출발부터 6시간 50분 나는 해냈다. 이제 대청봉이 코 앞이다. 핸드폰을 꺼내 집 사람에게 대청봉 도착을 자랑한다. 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인가. 황동지와 웃음을 나누며 뒤따르는 장,김동지를 기다린다. 부인과 함께한 장동지는 쉬며쉬며 오나보다. 기다리기로 했다. 걸어면서 먹은 주먹밥과 과자 덕분에 시장끼를 몰랐는데 중청봉에서 남들이 끓여 먹는 라면의 냄새가 정말 죽여 주었다. 뒤팀이 도착해야 우리도 라면을 끓일텐데...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 아! 대청봉, 대청봉이 내 발 아래.... 20분을 기다려도 뒤팀이 도착을 않는다. 대청봉이 코앞인데 오후 시간이라 오르는 사람이 드물어 보인다. 황동지와 먼저 오르기로 하고 대청봉을 향한다. 중청봉에서 대청봉까지 20분 마지막 힘을 내어 바위산을 오른다. 길옆 나무는 모두 누워있다. 일년 내내 불어오는 바람에 키가 클 수 없단다. 황동지가 나를 추월한다. 내 다리가 무척 무겁다. 한 발짝 떼어 놓기가 힘들어 진다. 드디어 대청봉 정상에 올랐다. 사방이 모두 내 발 아래서 숨을 죽인다. 크지도 않는 바위들로 이루어진 정상 1708미터, 정상에서 사진을 찍는다. 잠시 엉등이를 붙이고 쉬며 생각에 잠긴다. 아 꿈에 그리던 대청봉! 그 정상에 나는 올랐다. 이제 자신감이 든다. 매년 한 번씩 설악을 찾으리라. 사방을 둘러 본다. 안개가 확 몰려 올라 온다.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다.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안개가 사라지고 반데쪽에서 안개가 몰려 온다. 보이는 건 산과 산, 흐리고 늦은 시간이라 시계가 없다. 얼마를 기다린 뒤 후발팀의 소식이 전해온다. 이제 중청봉 대피소란다. 우리보다 한 시간 정도 늦었나 보다. 그래도 늦었지만 올라온다고 기다리란다. 카메라가 우리에게 있으니 어찔거야. 기다렸다. 한 참을 기다려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도착을 않는다. 내려가기로 했다. 내 발걸음이 왜 이리 무거울까? 올라올 때는 몰랐는데 내려가기가 너무 힘들다. 양 무릎이 너무 너무 아프다. 역시 산은 올라가기보다 내려오기가 더 힘들구나. 걱정이 된다. 오늘 5시 까지는 봉정암에 닿아야 하는데... 내려오는 중간 지점에서 후발팀과 조우한다. 황동지는 함께 다시 올라가고 나는 혼자 하산해야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이다. 내려가 중청봉에서 기다리라는 일행의 말에 나 혼자 먼저 봉정암으로 내려 가겠다고 했다. 다리가 너무 아파 먼저 살살 내려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뒷걸음 하산 중청봉대피소로 내려와 잠시 쉰다. 걱정이 앞선다. 혼자 소청봉으로 내려간다. 우리 일행은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올라오는 사람이 많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간다. 다리가 너무 아파 걸을 수가 없다. 이제 뒤로 걸어 본다. 간혹 내려가는 한 두 사람 외에는 한적하다. 다시 걱정이 엄습한다. 중청봉에서 소청봉까지 30분,조심조심 아마 40분은 족히 걸렸나 보다. 소청봉에는 공사가 한 창이다. 아마 산장을 개축하나보다. 이제 여기가 회운각 대피소 방면과 봉정암 코스의 갈림길이다. 봉정암 길로 접어들었다. 무척이나 내리막 길이다. 왜 평소 다리 힘을 길러 두지 않았던가. 정말 이대로 여기 주저 앉아 버리는게 아닌가. 한 발 두 발 뒤로 걷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며 앞서 내려가는 등산객들. 한 참 후에야 소청봉 대피소에 닿는다. 이젠 다 와 가겠지. 목이 말라 평소 좋아하던 콜라 한 병을 사 마신다. 꿀 맛이다. 내가 길러 생산한 진짜 꿀 보다 몇 배 더 달고 시원하다. 한 병 값이 무려 2천원이다. 아깝지 않다. 잠시 쉬다 다시 걷는다. 여기서부터 40분이란다. 아니 아직 40분간이나? 겁이 난다. 그래도 가야만 하는 길이다. 정말 고통스럽다. 어쩜 이리도 가파른 비탈길인가? 저 멀리 봉정암이 보인다. 아마 중청봉을 출발한 지 2시간 20여분이 지났나 보다. 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천신만고 끝에 파김치가 되어 봉정암에 도착했다. 이젠 정말 한 걸음도 옮기기 힘들다. 봉정암 대청봉을 밟고 봉정암에 도착했다. 이젠 쉬리라. 5시가 넘은 봉정암은 어두웠다. 다리가 너무 아파 봉정암 뒤의 기암 절벽도 사리암도 가 볼 수가 없다. 주관하신 이보살이 다가와 위로의 말을 전하며 잠자리를 정해준다. 처사 처소 4호실. 배낭를 풀어 두고 길게 늘어선 식사 줄을 피해 물을 마신다. 그리곤 후발팀을 기다린다. 봉정암에서는 핸드폰이 터진다. 장동지가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걸어 왔다. 소청 대피소란다. 30분쯤 뒤에 도착할 것 같다. 속이 쓰리다. 먹은 것이 없어서 일까? 아직도 식사 줄은 줄어들 줄 모른다. 작은 암자에 900명이 모였단다. 우리 일행중 가장 늦게 뒤팀이 도착한다. 모두들 걱정해준다. 짐을 풀고 식사를 한다. 미역국 한 국자에 밥 한 주걱 그 위에 오이 김치 4조각, 그게 전부다. 그래도 꿀 맛이란다. 벌써 산사는 어둠에 묻혀 버린다. 처사 처소 4호실엔 들지 말라 새우잠을 자야 한다는 예기는 익히 들어 아는 바다. 4호실 두 평 남짓 작은 방에 12명이다. 군대 시절 보충대에서 젯트식 잠을 잔 경험이 떠오른다. 뭐 그게 대순가? 문제는 내 다리다. 변소 가기가 힘들다. 이제 내일은 어쩐담? 걱정이 앞선다. 찬물에 쉬프를 하면 좋단다. 세면장에 가서 찬물로 두 발을 문지런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 한 방 일행들과 통성명을 하고 담소한다. 내 아픈 다리를 두고 모두들 걱정해 주며 치료법을 일러 준다. 우선 김동지가 갖고 온 소염진통 제리를 듬북 발라두었다. 장동지가 가져온 뜸으로 양 무릎 6군데를 뜬다. 충주서 오신 한 처사가 소염진통제 알약을 2개 주어 먹었다. 다리를 가만히 뻗고 누웠다. 통증은 느끼지 않으나 움직이기 힘들다. 다시 장동지와 세면실에 가서 양 무릎에 찬물 찜질을 10여분 동안 했다. 다시 돌아와 잠을 청한다. 내일 아침에는 괜찮아야 할 텐데... 4호실 옆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철재 계단이 있다. 밤이 새도록 오르락 내리락 쿵쾅거리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집 떠나면 잠 못드는 나는 밤새 쿵쾅거리는 소리로 한 잠도 못잤다. 정말 큰 일이다. 내일 하산을 어쩐담? 환자로 헬리콥터 신새를 질까? 아님 봉정암에 2,3일 더 머물다 다리가 나으면 내려갈까? 잠은 오지 않고 걱정만 앞선다. 내일 아침이면 괜찮겠지 걱정마라는 장동지의 위로에 잠시 눈을 붙인다. 사리탑에 가 절이라도 하며 빌고 싶지만 오르내릴 자신이 없어 포기 했다. 적멸보궁 사리탑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 사리탐, 부산 통도사 적멸보궁, 3대 적멸보궁 이란다. 새벽 6시 기상이다. 아침공양이 시작된다. 조심스럽게 걸어본다. 많이 좋아졌다. 걸을만 하다. 네 사람이 저 위 사리탑에 올랐다. 사방이 캄캄하다. 전등불에 의지해 사리탑에 닿았다. 다리를 낫게 한 건 불심이려니, 거금을 불전함에 넣고 3번 절했다. 집 사람의 건강을 빌었다. 가족의 건강을 소원했다. 내려오는 길 기암절벽을 감상하기엔 약간 어두웠다. 아침 공양 땐 가져간 반찬을 함께 나누어 먹을 여유가 생겼다. 어제 저녁과 같은 아침공양, 그리고 주먹밥 한 덩이. 우리일행은 6시 40분 백담사를 향해 깔닥고개를 내려갔 다. 백담사에서 8시간을 걸어 봉정암에 오려면 마지막 30분 깔닥고개를 넘어야 한다고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나 험할 줄이야! 경사 80도? 깔닥 고개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일행 중 김처사란 분이 자기의 무릎 아데(감아 고정시키는 보호대)를 내게 주었고 김동지의 스틱도 내가 사용하기로 했다. 내 배낭은 장동지가 앞뒤로 짊어지고.... 아마 200여명은 되리라. 외길밖에 없는 경사진 비탈길. 내려가는데도 20여분은 족히 걸렸으리라. 이젠 겁날게 없었다. 다소 자신감마져 생겼다. 지금부터는 계곡길을 슬슬 내려만 가면 된단다. 그래도 나는 우리 동지들 보다 다소 앞서 걸었다. 최소한 더 큰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할 텐데 생각하며. 금강산아 저리 가거라. 구곡동 계곡, 그리고 수렴동 계곡. 굽이굽이 계곡도 길었지만 주변의 경치는 금강산을 능가 했다. 계곡을 건너, 모퉁이를 돌때마다 나타나는 기암절벽에 물들어진 단풍. 가히 장가계에 버금갈 만 했다. 나는 2년 전 금강산 구룡폭포 쪽을 다녀왔지만 설악산의 구곡계곡과 수렴동 계곡이 펼친 장관은 금강산 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아 보였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계단, 그 밑을 흐르는 초록의 맑은 물, 떨어지는 폭포, 기암절벽과 단풍의 조화, 나는 아픈 다리도 잊고 황홀함에 빠져 있었다. 중간 중간 쉬며 마시는 한 모금의 물, 양말을 벗고 담가보는 탁족의 시원함, 아래쪽에 나타나는 빨간 단풍들, 아아 여기가 바로 선경이려니.... 200여명 중 제일 뒤에 우리가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 내가 못 내려 올까 봐 걱정들이다. 2시까지는 백담사에 닿아야 할 텐데. 경치에 취해 지루한 줄 모르고 5시간을 걸었다. 수렴동 대피소. 다시 우리는 쉬기로 했다. 배낭에 넣어온 과자랑 오이랑 사과들, 편안한 마음으로 즐겼다. 또 혼자 앞서 걸었다. 함께 걷다가 뒤쳐지면 모두가 늦게 된다. 수렴동 대피소를 떠나면서 주위의 아름다운 단풍들이 고단함을 잊게 해 준다. 어서 걸어 2시에는 백담사에 닿아야지.. 기다란 모퉁이를 돌아 영시암, 여기가 오세암과 수렴동 계곡의 갈림길이었다. 영원히 떠난 활 시위란 뜻일까?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 여기부터는 넓고 커다란 길 이 이어지겠지. 한 모금 물을 마신다. 동지들을 기다려 점심 먹을 곳을 찾았다. 개울가, 우리 일행은 물을 끓여 컵라면과 주먹밥을 먹는다. 라면을 싫어하는 장동지는 주먹밥과 커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아, 라면의 이 구수함! 6시간을 걸어 개울가에서 먹는 라면 맛은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더했다. 12시 반이다. 여기부터는 길도 좋겠고 1시간 20분이면 닿는 거리이다. 탁족을 하고 짐을 챙긴다. 일행을 앞서 혼자 또 출발했다. 백담사까지는 넓은 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작은 길이 오르막 내리막을 계속된다. 이쯤이면 핸드폰도 터질만한데.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불통이다. 올라오는 등산객이 많다. 길 양편으로 아직 남은 단풍이 너무 곱다. 50미터마다 세워둔 이정표가 10-07을 카리킨다. 백담세에서 본 10-28이었으니 10.5킬로를 걸어 온 것이다. 이제 남은 건 1킬로 정도. 마지막 힘을 내자. 20여분을 더 걸어 나는 백담사 등산로 안내판 앞에 닿을 수 있었다. 나는 해 냈다. 나는 해 냈다. 가장 험하다는 한계령 코스를 10시간 걸어 대청봉과 봉정암에 올랐다. 아픈 다리를 추슬려 다시 8시간의 행군 끝에 구곡담 계곡, 수렴동 계곡을 거쳐 여기 백담사에 가까이 섰다. 정말 만세다. 대청봉, 봉정암, 수렴동 계곡, 영시암, 백담사. 출발하기 전 인터넷을 통해 얼마나 많이 익혀 본 지명들인가! 집에 전화를 한다. 자랑도 자랑이지만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이 전화를 애타게 기다려 주었다. 아, 집과 가족이 이렇게 소중할 줄이야! 나 때문에 앞서간 일행들이 한 시간이나 기다릴 것이라 다소 부담이 된다. 10여분 기다려 일행과 함께 백담사에 이른다. 정확히 오후 2시다. 6시 30분 출발했으니 7시간 30분만에 도착한 셈이다. 장,황,김 동지들은 백담사 경내를 구경한다. 일행들에 미안한 나는 곧장 주차장에 가 본다. 일행은 한 사람도 없다. 백담사 왕복 버스를 타고 용대동으로 내려 온다. 처음 백담사에 왔을 때 계곡을 보려고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 그 흰 바위들과 맑은 물을 보고 감탄 했었는데, 이젠 흥미조차 없다. 그 보다 더한 절경을 보고 또 보며 내려 오지 않았는가? 버스로 15여분, 우리는 일행들과 합류했다. 모두들 늦었다는 핀잔 대신 내 다리를 걱정해 주었다. 더 바랄게 없다. 다시 한 코스가 남았다. 원래 계획으로는 설악동에 가서 신흥사를 거쳐 개조암에서 1박하고 울산 바위를 보고 다음 날 내려오기로 되어 있단다. 대구로 바로 가자는 의견과 개조암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에 우리 동지들은 낙산사 온천으로 가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일이 급한 두 부부는 대구로, 14명 정도는 낙산사로, 나머지 모두는 개조암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 동지들은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며 낙산사 온천으로 가기로 뜻을 모았다. 버스는 용대리를 거쳐 새로이 개통된 미시령 터널을 통과 속초 시내를 가로 질러 신흥사 주차장에 내린다. 모두들 개조암으로 떠나고 14명만 타고 온 버스로 다시 첫 날 잠 잤던 낙산사 유스호스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제 긴장이 풀리는가 보다. 피로와 고단함이 온 몸을 엄습한다. 우선 샤워부터하고 보자. 5시 반 공양까지는 쉴 수 있구나. 나 혼자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눕는다. 장황김 동지는 아직도 힘이 넘치는지 낙산사에 가 본단다. 저녁 공양, 이틀 만에 처음 먹어보는 고급식(?)이다. 밥, 공나물. 미역줄기, 무우채 그리고 미역국. 비벼서 배가 터지게 먹었다. 일찍 자리에 들려는데 황동지가 가져 온 모기약(?)이 있단다. 낙산 유스호스텔은 불자들만 쉬어가는 곳이라 술은 절대 안 되는 곳이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한국인 입양청년과 짧은 영어와 보디 렝개지로 의견을 교환하는 장동지가 대견하다. 다음 날 아침 6시반 아침 공양을 하고 잠시 쉰 후 낙산사로 갔다. 지난 여름 불탄 낙산사다. 재작년에 왔을 때 그처럼 웅장하던 낙산사가 모두 잿더미가 되고 다시 중건 중이다. 남아 있는 의상대와 홍련암을 둘러보고 낙산호텔의 해수탕에 몸을 담근다. 심해수를 끌어 올려 온천으로 개장했단다. 냉수탕 그 시원함에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다. 개조암에 갔던 일행들이 조금 후 온천에 들어 온다. 12시 반 무료 국수 공양하는 곳으로 모이라는 전갈이다. 1시간 30분 온천욕을 즐기고 상쾌한 바닷 바람을 맞는다. 그 울창하던 소나무 숲은 다 타버렸지만 바닷가의 경치는 그래도 좋왔다. 12시반 무료 국수 공양, 두 그릇을 먹었다. 낙산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공양, 우리 팀장도 매월 많은 양의 국수를 전하고 있다 했다. 불심,부처님을 따르는 이들은 베풀 줄 아는 게 우선인가 보다. 유스호스텔의 숙박, 저녁 아침 무료 공양, 점심 국수공양까지. 그래 나도 남을 위해 베풀면서 살아야지 생각해 본다. 고맙네 친구야 엄두도 못 냈던 대청봉 산행이었다. 그러나 나는 해 냈다. 정말 고맙네.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준 김창웅 형, 끝까지 보살펴 준 장예덕 형, 황학로 친구, 고맙고 감사하네. 우리는 해 냈다네. 한계령, 끝청봉, 중청 대피소, 대청봉, 소청봉, 봉정암, 깔닥고개, 수렴동 계곡, 영시암, 백담사, 이 모두가 우리 발 아래 백기를 들지 않았는가! 장하네. 정말 장하네. 내년에 또 한 번 설악 대청봉을 다시 밟아 보세나...... 사진을 찍어 보네 준 황동지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네. 우리는 강릉의 휴휴암을 거쳐 19일 오후 6시 출발지 광장코아에 무사히 도착 귀가 했고, 이후 이틀을 쉬며 이 산행 보고서를 올립니다. 지금은 다리도 다 풀렸고, 다만 입술이 터져 당나발이 되었음을 알립니다. 겁 없이 떠난 3박 4일 살악산 등산. 죽을 고생을 했지만 그 보람은 평생을 잊지 못 할 것이다. 산행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스틱은 반드시 2개 준비, 무릎아데도 2개, 소염진통제와 파스 그리고 케토톱 등 약품, 짐은 작게, 간식과 물, 등산화 등산복은 좋은 것으로, 마지막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영양식들. 참고 하게나. 무지한 필력으로 적었습니다. 잘 못된 문장이 있었더라도 양해하시고 끝까지 읽어 준 회원님들 감사감사.... 글과 사진을 줄여 넣었으나 용량초과로 더 이상 올리지 못합니다. 이미지 갤러리에 사진 올립니다. |